다이어트를 시작한 지 사흘 만에 포기했다면, 그 이유를 의지박약으로 돌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심리학에서는 이 실패를 전혀 다르게 설명하는 이론이 있습니다. 바로 미국의 심리학자 다프나 오이세르만이 제시한 '정체성 기반 동기(Identity-Based Motivation, IBM)' 이론입니다.
포기의 진짜 원인은 의지가 아니라 나답지 않아서였다
이 이론은 사람이 어떤 목표를 향해 움직일 때, 그 목표가 자신이 생각하는 나 자신의 모습과 얼마나 일치하는지가 성패를 가른다고 설명합니다. 다이어트나 저축, 공부 같은 목표가 자꾸 무너지는 이유도 의지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행동이 나답다고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새해가 되면 비슷한 다짐을 반복하고 비슷한 시점에 포기합니다. 정체성 기반 동기 이론은 이 반복되는 패턴을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정체성과 행동의 불일치라는 구조적인 문제로 바라봅니다. 오늘은 이 이론이 실제로 무엇을 말하는지, 일상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차근차근 풀어보겠습니다.
다프나 오이세르만은 어떤 학자인가
다프나 오이세르만은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USC)에서 심리학과 교육학을 함께 연구해온 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동기와 자기조절, 사회인지 분야에서 오랫동안 연구를 이어오며 사람들이 왜 어떤 목표는 끝까지 밀어붙이고 어떤 목표는 쉽게 놓아버리는지를 파고들었습니다.
그가 제안한 정체성 기반 동기 이론은 학계뿐 아니라 교육 현장에서도 폭넓게 활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학생들의 학습 동기를 끌어올리는 프로그램이나 청소년의 진로 설계를 돕는 개입 프로그램에도 이 이론의 원리가 반영된 사례가 소개되곤 합니다.
복잡한 심리학 용어처럼 들리지만 핵심은 단순합니다. 사람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감각을 바탕으로 행동을 선택하고, 그 행동이 자기 이미지와 맞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목표라도 오래 유지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정체성과 행동이 어긋나면 벌어지는 일
예를 들어 평소 운동과 담을 쌓고 지내던 사람이 갑자기 매일 새벽 러닝을 결심했다고 가정해봅시다. 처음 며칠은 의지로 버틸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하는 위화감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정체성 기반 동기 이론에 따르면 바로 이 지점에서 포기가 시작됩니다. 목표 자체가 나쁜 게 아니라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행동이 스스로 생각하는 정체성과 충돌하기 때문에 동기가 급격히 떨어진다는 설명입니다.
반대로 평소 나는 매일 조금씩이라도 몸을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자기 인식을 가진 사람은 같은 러닝을 시작해도 훨씬 오래 지속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행동보다 정체성이 먼저 자리 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힘든 순간을 해석하는 방식이 다르다
이 이론에서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어려움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입니다. 목표를 향해 가다 보면 누구나 힘든 순간을 만나는데, 이 힘듦을 해석하는 방식이 두 갈래로 나뉜다고 오이세르만은 설명합니다.
하나는 이렇게 힘든 걸 보니 정말 중요한 일을 하고 있구나라고 받아들이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이렇게 힘든 걸 보니 나랑 안 맞는 일이구나라고 받아들이는 방식입니다. 같은 어려움이라도 해석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로 이어집니다.
전자로 해석하는 사람은 어려움을 목표에 다가가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 오히려 동기가 강해지지만, 후자로 해석하는 사람은 그 순간 바로 포기 버튼을 누르게 됩니다. 다이어트 중 정체기를 만났을 때나 공부하다 성적이 안 오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략도 나답게 짜야 오래간다
정체성 기반 동기 이론이 강조하는 또 하나의 축은 전략의 정체성 일치입니다. 같은 목표라도 그 목표를 이루는 방법이 자신의 성향과 맞아야 오래 지속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헬스장에서 혼자 묵묵히 운동하는 방식보다 그룹 러닝이나 스터디 모임처럼 함께하는 전략이 훨씬 잘 맞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혼자 있는 시간이 편한 사람에게 단체 활동을 강요하면 오히려 동기가 꺾입니다.
결국 같은 목표라도 사람마다 지속 가능한 방법은 다르며, 그 방법이 자신의 정체성과 맞아떨어질 때 비로소 습관으로 자리 잡는다는 것이 이 이론의 실천적인 메시지입니다.
일상에서 바로 적용해볼 수 있는 방법
이 이론을 실생활에 적용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첫째, 목표를 해야 할 일 대신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문장으로 바꿔보는 것입니다. 살을 빼야 한다 대신 나는 몸을 아끼는 사람이다처럼 표현을 바꾸는 식입니다.
둘째, 힘든 순간이 찾아오면 그 순간을 포기의 신호가 아니라 목표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신호로 다시 해석해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셋째, 남들이 좋다고 하는 방법이 아니라 자신의 성향에 맞는 실행 방식을 찾아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거창한 결심보다 평소 자신의 모습과 크게 어긋나지 않는 작은 목표부터 잡아보는 것도 좋은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정체성이 먼저 바뀌면 행동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것이 이 이론이 전하는 핵심입니다.
왜 이 이론이 지금 다시 주목받을까
자기계발 콘텐츠가 넘쳐나는 요즘, 의지력을 강조하는 조언은 오히려 사람들을 지치게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노력했는데도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스스로를 탓하게 되고 그 죄책감이 다음 시도를 더 어렵게 만드는 악순환이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정체성 기반 동기 이론은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날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실패의 원인을 나는 왜 이렇게 의지가 약할까가 아니라 이 목표와 방법이 나와 잘 맞았는가로 옮겨 생각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관점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같은 목표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목표를 세우는 방식, 힘든 순간을 넘기는 방식, 나에게 맞는 전략을 고르는 방식까지 다시 점검해볼 시점이라면 이 이론이 좋은 참고가 될 수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건 얼마나 독한 마음을 먹느냐가 아니라 그 목표가 지금의 나와 얼마나 맞닿아 있느냐인지도 모릅니다. 다음에 어떤 목표를 세우게 되든 그 목표가 나다운 모습과 이어져 있는지 한 번쯤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정체성 기반 동기 이론, 내 목표에 대입해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댓글로 의견 남겨주세요.